침묵 속의 고통, 남성 피해자의 현실
“남자가 맞고 살다니, 그럴 리 없어.”
“그건 그냥 부부싸움이지, 학대는 아니야.”
이러한 말들은 남성 피해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외면당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회적 통념과 고정관념은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의 폭력 피해를 인정받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남성들도 여성으로부터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러한 피해는 심각한 심리적 후유증을 남깁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2023년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약 2,438건에 달했으며, 이 중 남성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명시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증가하는 추세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국립가정폭력핫라인(National Domestic Violence Hotline)에 따르면, 매년 약 12%의 남성이 배우자나 파트너로부터 폭력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학대를 당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저를 비웃거나 믿지 않아요. 남자가 그런 일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하죠.” 이 말은 남성 피해자들이 직면한 심리적 수치심과 사회적 낙인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남성 피해자가 여성 폭력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어떤 법적,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도전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남성 피해자의 현실과 여성폭력방지법
1. 여성폭력방지법(VAWA)의 성 중립적 조항과 오해
여성폭력방지법(VAWA)은 1994년 미국에서 제정된 법으로, 이름 때문에 여성 피해자만을 위한 법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성별 중립적인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과 여성 폭력 피해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VAWA는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배우자, 자녀, 부모가 학대를 당했을 때 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로부터 학대를 받은 남성이 VAWA를 통해 자가 청원(self-petition)을 신청하여 이민 신분을 유지하거나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유사한 법적 틀이 가정폭력방지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존재합니다. 2023년 대구광역시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 신고는 2,438건, 성폭력은 1,711건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남성 피해자도 포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남성 피해자는 법적 신청 과정에서 여러 장벽에 부딪힙니다. 예를 들어, 경찰이나 법원에서 “남성이 학대받을 리 없다”는 편견 때문에 신고가 무시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심리적 수치심과 낙인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입니다.
2022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피해자들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물리적 폭력의 경우, 배우자에게서 폭력을 경험한 남성이 2021년 7.2%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2019년 6.2%에서 소폭 증가한 수치입니다. 정신적 폭력의 경우도 남성 피해자는 2021년 23.3%로,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남성 역시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지만,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출처: 여성가족부, 2022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보고서)
오해 바로잡기: 많은 이들이 VAWA나 한국의 가정폭력방지법이 여성만을 위한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법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피해자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남성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인식과 낙인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여성의전화가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 피해자의 신고율은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이는 사회적 낙인과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2. 남성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수치심과 낙인
남성 피해자가 여성 폭력을 경험할 때 가장 큰 장벽은 심리적 수치심과 낙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성은 강인함, 통제력, 독립성을 상징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이는 남성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중 남성의 경우 약 70%가 자신의 피해를 “사소한 갈등” 또는 “내 잘못”으로 치부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저는 한 30대 남성 내담자와의 상담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아내로부터 지속적인 감정 조작과 언어적 폭력을 당했지만, 이를 “그냥 부부 싸움”으로 여겼습니다. “제가 참지 못한 거예요. 남자가 더 강해야 하잖아요.”라는 그의 말은 내면화된 독성 남성성과 수치심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경우, 보호를 제공하는 첫걸음은 그들의 경험을 “학대”로 명명하고, 이를 정당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리적 수치심은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감정 조작, 재정 통제, 거짓 고발 등 비신체적 학대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이민자 남성의 경우 배우자가 “신고하면 추방된다”는 협박을 하며 통제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한 아이티 출신 남성은 “우리 문화에서는 남자가 학대를 말하면 가족의 수치가 된다”며 침묵을 선택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교차적 남성성—인종, 이민 신분, 문화적 배경—이 낙인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 신고 누락: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고 느껴 신고를 꺼립니다.
- 감정 억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점으로 여겨 고통을 속으로 삭입니다.
- 학대의 지연된 인식: 폭력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탓하거나 상황을 축소 해석하여 학대임을 뒤늦게 인지합니다.
- 마비와 충격 증상: 너무나 깊은 수치심으로 인해 마치 얼어붙은 듯한 마비 상태에 빠지거나, 충격으로 인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3. 대한민국 내 남성 피해자 통계와 현실
대한민국에서 남성 피해자에 대한 통계는 아직 충분히 체계화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청의 2018년 범죄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가해자의 85% 이상이 남성이지만, 이는 피해자 성별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여성의전화와 같은 단체는 남성 피해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데이트폭력과 디지털 성범죄에서 남성 피해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2023년 대구광역시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768건, 디지털 성범죄는 649건으로, 이 중 남성 피해자가 일부 포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성 피해자는 종종 경찰이나 상담소에서 “남자가 왜 이런 걸 신고하냐”는 반응을 마주합니다. 이는 낙인의 또 다른 형태로,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막습니다. 예를 들어, 한 40대 남성은 아내로부터 물건을 던지는 신체적 폭력을 당했지만, 경찰에 신고했을 때 “부부싸움은 집에서 해결하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외부로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고, 심리적 고립을 심화시킵니다.
4. 법적·심리적 지원과 대처 방안
남성 피해자가 여성 폭력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법적, 심리적, 사회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래는 구체적인 대처 방안입니다.
법적 지원
- VAWA 자가 청원: 미국 내 남성 피해자는 VAWA를 통해 자가 청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학대받은 배우자가 이민 신분을 유지하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라 보호 명령을 신청할 수 있으며, 이는 가해자의 접근 금지, 상담 의무 등을 포함합니다.
- 법률 상담소 활용: 한국여성의전화(02-3156-5400)나 국가인권위원회(1331)와 같은 기관은 남성 피해자를 위한 상담과 법적 지원을 제공합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 신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제도를 강화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 법의학적 평가: 법의학 전문가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문서화하고, 법원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여 신뢰성을 높입니다. 이는 특히 남성 피해자의 신빙성을 증명하는 데 중요합니다.
심리적 지원
- 인지처리 치료(CPT): CPT는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학대”로 재정의하고, 수치심을 줄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한국심리학회지의 연구에 따르면, CPT는 학대 피해자의 자기 낙인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문화적 맥락 고려: 이민자나 소수인종 남성의 경우, 문화적 낙인을 고려한 상담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상담소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전문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서사적 보상: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주권을 회복하도록 돕는 치료법입니다. 이는 특히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신화를 극복하는 데 유용합니다.
예방 방안
- 교육과 인식 개선: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깨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하며, 남성 피해자에 대한 인식을 포함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 지원 네트워크 구축: 남성 피해자를 위한 전용 쉼터나 상담소가 부족한 현실을 개선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여성의전화는 남성 피해자도 지원하지만, 전문화된 프로그램은 드뭅니다.
- 사회적 낙인 해소: 미디어를 통해 남성 피해자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확산해야 합니다.
5. 서사 주권의 회복: 피해자의 정체성 재정의
남성 피해자가 보호를 받는 과정은 단순히 법적 절차를 넘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한 내담자와의 대화에서 그가 “저는 아버지로서, 직장인으로서 살아남고 싶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피해자라는 레이블을 넘어, 그들의 다층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법의학적 평가에서 저는 항상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판사에게 전할 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함께 알리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은 피해자가 자신의 서사를 되찾고, 심리적 수치심을 넘어서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한 한국계 미국인 남성은 VAWA 신청 과정에서 자신의 학대 경험을 문서화하며,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자신의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법원에 그의 인간적 면모를 전달하며 신뢰를 얻는 데 기여했습니다.
결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다
남성이 여성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낙인을 극복하는 여정입니다. 여성폭력방지법은 이름과 달리 모든 피해자를 포용하며, 한국의 가정폭력방지법 역시 성별 중립적 보호를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남성 피해자의 심리적 수치심과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 상담, 사회적 인식 변화를 병행해야 합니다.
저는 한 남성 생존자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제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이 말은 우리가 피해자의 침묵을 깨고,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여성 폭력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 고통이며, 모든 생존자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고통을 보이게 만드는 데 동참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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